[스포츠서울 | 정의정 웰니스전문위원]
② 웰빙을 넘어 웰니스의 시대로
“잘 살아보세.” 우리는 오랫동안 이 구호와 함께 달려왔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은 근면·자조·협동을 강조하며 국가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폐허에서 일어선 대한민국은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 우리가 배운 ‘잘 산다’는 법은 정신적 풍요보다는 경제적 성공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잘 사는 삶’은 더 많이 갖고, 더 빨리 성장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더 큰 집, 더 좋은 차, 더 높은 연봉. 우리는 이것들을 위해 하루 12시간씩 일했고, 주말도 반납했으며, 관계도 뒤로 미뤘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마음은 점점 더 공허해졌다. 우리는 ‘잘 사는 법’은 배웠지만, ‘온전히 사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웰빙이 열어준 문, 그리고 남은 질문
2000년대 중반, 한국 사회에 ‘웰빙’ 열풍이 불었다. 대형마트마다 유기농 식품 코너가 생겨나고, 동네마다 요가 센터가 들어섰다. ‘로하스(LOHAS)’, ‘슬로우 라이프’, ‘힐링’ 같은 용어가 유행했다. 이는 분명 긍정적인 변화였다. 웰빙은 ‘건강’과 ‘삶의 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였고, 사람들에게 운동하고 잘 먹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그러나 웰빙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유기농 식품을 먹고, 주말에 요가를 해도 월요일 아침의 공허함은 여전했다. 건강검진 수치는 좋아졌지만, 관계는 나아지지 않았다. 몸은 편해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또한 웰빙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면서 일부는 ‘소비’의 형태로 변질되기도 했다. SNS에 올릴 요가 사진, 인증샷을 위한 디톡스 주스, 주말에만 잠깐 ‘웰빙족’이 되는 식. 웰빙이 일상의 철학이 아니라 특별한 날의 이벤트가 되어버린 것이다.
웰빙은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 웰빙은 ‘무엇을 하느냐’에 집중했지, ‘어떻게 존재하느냐’는 묻지 않았다. 신체적 건강을 다뤘지만, 정신적·관계적·영적 차원까지는 닿지 못했다.

웰빙에서 웰니스로, 진화의 시작
웰빙(Well-being)은 말 그대로 ‘좋은 상태에 있음’을 뜻한다. 편안하고 안정된 삶, 물질적·신체적 균형의 회복을 추구한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충분히 쉬는 것. 이 모든 것은 분명 중요하며, 웰빙은 이를 사회에 각인시킨 공로가 있다. 웰빙은 ‘결과’와 ‘상태’에 주목한다. “나는 지금 편안한가?” “나는 건강한가?”
웰니스(Wellness)는 웰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웰빙을 포함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웰니스는 단순히 좋은 상태에 ‘있는 것’을 넘어, 좋은 상태를 ‘지향하며 살아가는 과정’ 그 자체다. 웰니스는 신체적 건강을 넘어 정신적·정서적·사회적·영적·환경적 차원을 포괄한다. 의식적인 선택, 관계의 회복, 존재의 성장이라는 행동적이고 영적인 차원을 포함한다.
즉, 웰빙이 토대라면 웰니스는 그 위에 세워진 집이다. 웰빙이 ‘편안함’이라면 웰니스는 ‘온전함’이다. 웰빙이 “나는 편안한가?”를 묻는다면, 웰니스는 “나는 온전한가?”를 묻는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건강을 위해 유기농 샐러드를 먹는 것은 웰빙이다. 하지만 그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누가 재배했는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다면 그것은 웰니스다.
헬스장에서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은 웰빙이지만, 매일 아침 집 근처 공원을 걸으며 내 몸과 마음의 신호에 귀 기울이고, 자연과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다면 그것은 웰니스다. 피로 회복을 위해 충분히 자는 것은 웰빙이지만, 왜 내가 피로한지 근본 원인을 탐색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재조정하는 것은 웰니스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주말에 마사지를 받으러 가는 것은 웰빙이다. 하지만 스트레스의 근본 원인을 살피고, 동료와의 관계를 개선하며, 업무에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는 것은 웰니스다.
웰빙은 증상을 완화하지만, 웰니스는 원인을 탐색한다. 웰빙은 외부에서 나를 편하게 해주는 것을 찾지만, 웰니스는 내면에서 나를 온전하게 만드는 힘을 기른다. 웰빙이 시작이라면, 웰니스는 그 여정의 깊이다.

의식의 새마을운동 - 온전한 삶을 위한 내면의 혁신
한국 사회는 이제 ‘의식의 새마을운동’, 즉 삶을 온전하게 만드는 내면의 혁신을 시작해야 한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하면 된다”는 의지로 물질적 빈곤을 극복했다면, 이제는 “온전히 존재한다”는 자각으로 정신적 관계적 결핍을 채워야 할 때다.
경제 성장으로 이룬 외형적 풍요를 넘어, 정신적·관계적 성숙을 추구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더 이상 외부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남들의 기준에 맞춘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본성을 찾고 나답게 살아가는 것. 남과 비교하며 불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의 존재를 온전히 느끼는 것. 이것이 21세기형 ‘잘 사는 법’이다.
이 전환은 개인에서 시작해 사회 전체로 확산되어야 한다. 기업은 직원의 생산성만이 아니라 정신 건강을 돌봐야 하고, 학교는 성적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야 하며, 사회는 성공의 단일한 기준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해야 한다.

웰니스 브랜드, 진정성으로 소통하고, 삶을 치유하는 브랜드
웰빙이 “잘 사는 법”을 가르쳤다면, 웰니스는 “온전히 존재하는 법”을 가르친다. 이제 기업들도 이 전환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건강에 좋은’ 제품을 파는 것을 넘어, 사람들의 삶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가치를 제공하려는 브랜드들이 늘어나고 있다.
국제웰니스협회는 올해 스포츠서울과 함께 ‘대한민국 웰니스 브랜드 대상’을 공동 주관한다. 이 상은 단순히 건강하거나 성공한 브랜드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지속성·공감성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브랜드를 발굴하는 자리다. 비싼 제품을 파는 브랜드가 아니라, 사람들이 온전히 존재할 수 있도록 돕는 브랜드. 일회성 소비를 부추기는 브랜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브랜드.
기업이 기술로 사람을 효율화하던 시대를 넘어, 이제는 우리의 삶을 치유하는 기업이 진정한 경쟁우위를 가지게 될 것이다.
“잘 살아보세”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온전히 존재하라”의 시대다. 그것이 우리가 다시 배우는 진짜 ‘잘 사는 법’이다.
dorrit@naver.com
[스포츠서울 | 정의정 웰니스전문위원]
② 웰빙을 넘어 웰니스의 시대로
“잘 살아보세.” 우리는 오랫동안 이 구호와 함께 달려왔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은 근면·자조·협동을 강조하며 국가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폐허에서 일어선 대한민국은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 우리가 배운 ‘잘 산다’는 법은 정신적 풍요보다는 경제적 성공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잘 사는 삶’은 더 많이 갖고, 더 빨리 성장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더 큰 집, 더 좋은 차, 더 높은 연봉. 우리는 이것들을 위해 하루 12시간씩 일했고, 주말도 반납했으며, 관계도 뒤로 미뤘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마음은 점점 더 공허해졌다. 우리는 ‘잘 사는 법’은 배웠지만, ‘온전히 사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웰빙이 열어준 문, 그리고 남은 질문
2000년대 중반, 한국 사회에 ‘웰빙’ 열풍이 불었다. 대형마트마다 유기농 식품 코너가 생겨나고, 동네마다 요가 센터가 들어섰다. ‘로하스(LOHAS)’, ‘슬로우 라이프’, ‘힐링’ 같은 용어가 유행했다. 이는 분명 긍정적인 변화였다. 웰빙은 ‘건강’과 ‘삶의 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였고, 사람들에게 운동하고 잘 먹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그러나 웰빙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유기농 식품을 먹고, 주말에 요가를 해도 월요일 아침의 공허함은 여전했다. 건강검진 수치는 좋아졌지만, 관계는 나아지지 않았다. 몸은 편해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또한 웰빙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면서 일부는 ‘소비’의 형태로 변질되기도 했다. SNS에 올릴 요가 사진, 인증샷을 위한 디톡스 주스, 주말에만 잠깐 ‘웰빙족’이 되는 식. 웰빙이 일상의 철학이 아니라 특별한 날의 이벤트가 되어버린 것이다.
웰빙은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 웰빙은 ‘무엇을 하느냐’에 집중했지, ‘어떻게 존재하느냐’는 묻지 않았다. 신체적 건강을 다뤘지만, 정신적·관계적·영적 차원까지는 닿지 못했다.
웰빙에서 웰니스로, 진화의 시작
웰빙(Well-being)은 말 그대로 ‘좋은 상태에 있음’을 뜻한다. 편안하고 안정된 삶, 물질적·신체적 균형의 회복을 추구한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충분히 쉬는 것. 이 모든 것은 분명 중요하며, 웰빙은 이를 사회에 각인시킨 공로가 있다. 웰빙은 ‘결과’와 ‘상태’에 주목한다. “나는 지금 편안한가?” “나는 건강한가?”
웰니스(Wellness)는 웰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웰빙을 포함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웰니스는 단순히 좋은 상태에 ‘있는 것’을 넘어, 좋은 상태를 ‘지향하며 살아가는 과정’ 그 자체다. 웰니스는 신체적 건강을 넘어 정신적·정서적·사회적·영적·환경적 차원을 포괄한다. 의식적인 선택, 관계의 회복, 존재의 성장이라는 행동적이고 영적인 차원을 포함한다.
즉, 웰빙이 토대라면 웰니스는 그 위에 세워진 집이다. 웰빙이 ‘편안함’이라면 웰니스는 ‘온전함’이다. 웰빙이 “나는 편안한가?”를 묻는다면, 웰니스는 “나는 온전한가?”를 묻는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건강을 위해 유기농 샐러드를 먹는 것은 웰빙이다. 하지만 그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누가 재배했는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다면 그것은 웰니스다.
헬스장에서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은 웰빙이지만, 매일 아침 집 근처 공원을 걸으며 내 몸과 마음의 신호에 귀 기울이고, 자연과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다면 그것은 웰니스다. 피로 회복을 위해 충분히 자는 것은 웰빙이지만, 왜 내가 피로한지 근본 원인을 탐색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재조정하는 것은 웰니스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주말에 마사지를 받으러 가는 것은 웰빙이다. 하지만 스트레스의 근본 원인을 살피고, 동료와의 관계를 개선하며, 업무에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는 것은 웰니스다.
웰빙은 증상을 완화하지만, 웰니스는 원인을 탐색한다. 웰빙은 외부에서 나를 편하게 해주는 것을 찾지만, 웰니스는 내면에서 나를 온전하게 만드는 힘을 기른다. 웰빙이 시작이라면, 웰니스는 그 여정의 깊이다.
의식의 새마을운동 - 온전한 삶을 위한 내면의 혁신
한국 사회는 이제 ‘의식의 새마을운동’, 즉 삶을 온전하게 만드는 내면의 혁신을 시작해야 한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하면 된다”는 의지로 물질적 빈곤을 극복했다면, 이제는 “온전히 존재한다”는 자각으로 정신적 관계적 결핍을 채워야 할 때다.
경제 성장으로 이룬 외형적 풍요를 넘어, 정신적·관계적 성숙을 추구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더 이상 외부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남들의 기준에 맞춘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본성을 찾고 나답게 살아가는 것. 남과 비교하며 불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의 존재를 온전히 느끼는 것. 이것이 21세기형 ‘잘 사는 법’이다.
이 전환은 개인에서 시작해 사회 전체로 확산되어야 한다. 기업은 직원의 생산성만이 아니라 정신 건강을 돌봐야 하고, 학교는 성적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야 하며, 사회는 성공의 단일한 기준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해야 한다.
웰니스 브랜드, 진정성으로 소통하고, 삶을 치유하는 브랜드
웰빙이 “잘 사는 법”을 가르쳤다면, 웰니스는 “온전히 존재하는 법”을 가르친다. 이제 기업들도 이 전환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건강에 좋은’ 제품을 파는 것을 넘어, 사람들의 삶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가치를 제공하려는 브랜드들이 늘어나고 있다.
국제웰니스협회는 올해 스포츠서울과 함께 ‘대한민국 웰니스 브랜드 대상’을 공동 주관한다. 이 상은 단순히 건강하거나 성공한 브랜드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지속성·공감성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브랜드를 발굴하는 자리다. 비싼 제품을 파는 브랜드가 아니라, 사람들이 온전히 존재할 수 있도록 돕는 브랜드. 일회성 소비를 부추기는 브랜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브랜드.
기업이 기술로 사람을 효율화하던 시대를 넘어, 이제는 우리의 삶을 치유하는 기업이 진정한 경쟁우위를 가지게 될 것이다.
“잘 살아보세”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온전히 존재하라”의 시대다. 그것이 우리가 다시 배우는 진짜 ‘잘 사는 법’이다.
dorrit@naver.com